고려청자의 역사

고려청자의 역사는 단순히 청자라는 유물에 의한 구분보다는 그것을 생산해 낸 가마의 구조와 함께 살펴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보여진다.

현재까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고려청자는 발생 시기와 발생 장소, 발생 이유부터가 이견이 매우 많아 통일된 학설이 아닌 다양한 학설로 아직까지 연구되고 있다. 이들의 학설 모두를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므로 간략하게 학설의 중심만 소개하고, 가마의 구조를 통해 고려청자의 변천과정을 단계별로 구분하고 대표적인 가마터와 출토유물 등을 소개하겠다.

청자의 발생설은 중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에 의한 발생설과 한반도 내에서 통일신라시대에 도기에서 자기로 자체 발생하였다는 설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중국 당말오대(唐末五代)에 오월국(吳越國)으로부터 기술이 전수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초기단계의 자기제작은 중국의 기술 집단이 직접 들어와서 가마를 짓고 그릇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한국에 기술만 전수했는지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자료 가운데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터는 시흥 방산동 요지인데, 『芳山大窯』발굴보고서에 따르면, 이 가마는 중국의 당·오대·송 시기에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화남지방의 전형적인 가마구조인 내화전(耐火塼 : 불에 잘 견디는 벽돌)으로 축조한 용요(龍窯)와 형태와 규모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도입 시기, 즉 언제부터 한국에서 청자가 제작되었느냐 하는 문제는 다시 여러 가지 주장으로 나누어진다. 대표적인 학설로는 정양모 선생의 9세기 후반경, 윤용이·강경숙 선생의 918년이 있으며, 이 외에 북한의 김영진 선생도 황해남도 봉천군 원산리 2호 요지(최초요)를 9세기 후반으로 편년하고 있다. 이들 학자들의 편년에 의하면 한국 자기의 발생은 크게 통일신라말~고려 건국 초로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근거가 될 만한 편년자료가 미약하여 몇 년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학자들의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조사된 고려자기 가마터들을 구조적 특징에 따라 단계를 나누어보면, 자기가 중국의 영향으로 발생한 초기단계·한국식 고려자기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중기단계·고려자기의 제작기술이 절정을 이루는 후기단계·고려자기가 쇠퇴하는 말기단계 등의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각 단계별로 해당하는 가마터를 소개하고 출토유물, 가마의 특징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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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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