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현대 시문학의 거장 신석정 시인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문학발전의 요람으로 5권의 대표시집, 유고시집, 친필 원고 등 5000여점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영상실에서 볼 수 있는 10분 정도의 영상은 시인 신석정의 삶과 작품세계 등 시인 신석정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자료 영상이다. 신석정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사진 자료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작가들 중 이렇게 많은 인물 사진 자료를 본적이 없다. 그의 일대기를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 전쟁의 비극과 군사독재 시대의 암울한 세월을 겪어 온 신석정이다. 그 아픈 역사의 시간 속에서 신석정은 그 시간들을 시로 남겨두었다.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
‘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있다.’ 전시실 입구는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라는 글귀가 기다리고 있다. 석정의 좌우명이다. ‘지재고산유수‘는 ’‘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 즉 자연에 있다’는 뜻이다. 신석정은 ‘한가롭고 고요하여 말이 적고, 영화와 이익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도연명의 경지를 그리면서 속된 것을 멀리했다 한다. 그러므로 지재고산유수는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지조를 지키고자 하는 작가의 신념과 기개를 뜻한다. 그는 ‘저 산의 의연함과 거침없는 물의 흐름과 같이 높은 지조를 변함없이 지니고 살겠다’라는 뜻을 좌우명으로 삼고 격변의 시대에 흔들림 없이 올곧은 지조를 지키며 살았다.
신석정은 헤이그 밀사 사건이 발생했던 1907년에 태어났다. 사리에 분명하고 작은 잘못에도 엄격했던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일제 강점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첫 번째 시집 '촛불'을 발표할 무렵, 지식인 대부분이 친일부역자로 변절하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해방때까지 붓을 꺾었다. 30년대 시인 중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친일 시를 남기지 않은 시인으로는 신석정이 유일하다 한다. 자연과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민족 시인으로 존경받는 그가 목가시인이나 저항시인이라 불리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다. 무릇 시인은 그 모든것을 아울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군사독재시대의 어두운 현실을 지나오면서 ‘목가적인 촛불’, 때로는 ‘시대를 밝히는 촛불’로 일생을 교육자와 시인으로 살아온 신석정. 그의 발자취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겨지는 의미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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