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자연이 숨쉬는 아름다운 부안!

최재철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 부안이야기 > 부안이야기 > 부안의 인물 > 최재철
글자키우기 글자줄이기
인쇄하기
부안의 인물 ‘최재철’
崔在澈

시대 : 1843년(헌종9) ~ 1903(고종40)

최재철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덕장(德章)이며, 호는 학남(鶴南)이고,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1843년(헌종9)에 돈령(敦寧) 명악(鳴岳)의 아들로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문에 힘쓰더니 1875년(고종12)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그로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서 성균관 전적(成均館 典籍)에서 정언(正言), 헌납(獻納), 사간(司諫), 지평(持平), 장령(掌令), 감찰(監察), 집의(執義), 경기도사(京畿道事), 좌우통례(左右通禮), 군자감정(軍資監正) 등을 차례로 거쳤고 생원감시관(生員監試官)과 별시강경시관(別試講經試官)에 차출되기도 하였다.

다시 1894년(고종31)에는 홍문관 교리(弘文館 敎理)에 제수되었고 이어 정읍현감(井邑縣監)으로 나갔다. 그가 관직에 있을 때는 열강의 동진(東進)과 동학(東學)의 봉기 등의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데 동학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일본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는 긴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32)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벼슬을 그만 둔 뒤로는 고향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나오지를 않고 시국만을 근심하였는데 병을 얻어 마침내 일어나지 못하고 1903년(고종40)에 졸하니 향년이 61세였다. 그의 묘는 마을 옆의 선산에 장사하였다. 그는 어려운 때에 관계에 나아가서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당시 부안출신으로서는 유일한 관원으로 향리에서 존경받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없어서 그의 조카를 양자로 들여 후사를 이었다.

- 부안군지 中에서 -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