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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달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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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고홍달’
高弘達

시대 : 1563년(명종18) ~ 1637년(인조15)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달부(澾夫), 호는 노곡(老谷) 또는 죽호(竹湖),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문충공(文忠公) 경(慶)의 후예이며 제원군(濟原君) 사렴(士濂)의 손자이며 참의(參議) 현(晛)의 아들로 부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효우가 지극하였으며 경학에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용만(龍彎)으로 서행을 할 때에 그가 호가를 하였다. 그 공으로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1605년(선조 38)에는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다. 그리고 광해조(光海朝)때에 문과(文科)에 응시하러 서울에 올라갔는데 때마침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시키자는 이른바 폐모론(廢母論)이 일고 있음을 보고는 과거를 단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623년(인조 1)에는 봉곡(鳳谷) 김동준(金東準)과 함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복위상소를 올리려 서울에 올라갔더니 때에 이미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났으므로 인조(仁祖)의 등극을 축하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어 천거를 받아 선공감 참봉(繕工監 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했다. 그리고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니 동지들과 함께 의병과 군량을 보냈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에는 의병을 모아 인조를 모시러 올라가다가 여산(礪山)에 이르러 화의가 맺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통곡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시문과 문장에 뛰어났으며 석주(石洲) 권필權鞸), 택당(澤堂) 이식(李植)등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1644년(인조 22)에 향년 70세에 졸하였다. 그가 졸한 뒤에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의 증직이 내려졌고 그의 유고는『양현실기(兩賢實記)』란 이름으로 간행되어 전해오고 있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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