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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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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김해’
金垓

시대 : 1563년(명종18) ~ 1637년(인조15)

김해는 자가 여후(汝厚)이며, 호는 퇴우당(退憂堂)이고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문정공(文貞公) 구의 후예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옹천 김석홍(甕泉 金錫弘)의 증손이며 판결사(判決使) 의복(義 福)의 아들로 부안읍 옹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더니 그 일이 조정에 알려져서 효우와 학행으로 천거되어 직장(直長)에 제수되었다. 1592년(선조25)에 임진왜란 일어나서 선조(宣祖)가 용만으로 몽진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 울로 달려가서 용만까지 어가(御駕)를 호위하였다. 난 후에 그 공으로 호성원종일등공신(扈聖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그리고 1624년(인조2)의 이괄(李适)의 난에도 인조(仁祖)를 호가하였다. 그 공으로 장악원 주부(掌樂院 主簿)에 제수되었다. 이어 1627년(인조5)의 정묘호란에도 군졸과 군량(軍糧)을 모았으며 1636년(인조14)의 병 자호란(丙子胡亂)에는 이미 나이가 74세가 되는 고령이어서 그의 아들 이겸(以謙)을 시켜 병량을 모아서 군진으로 보냈다. 그는 광해조(光海朝)때에는 벼슬에서 물러나와 근심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퇴우당(退憂堂)이라 편액을 걸고 조용하게 여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1637년(인조5)에 75세를 일기로 졸하니, 고을의 사람들이 그의 충효를 추모하여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에 추배하였다. 한편 그의 묘는 부안군 주산면 소산리 뒷산에 있으며 그의 후손도 이 소산리를 중심 으로 하여 세거하고 이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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