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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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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이유’
李瑜

시대 : 1545년(인종1) ~ 1597년(선조30)

이유의 자는 덕형(德馨)이고 호는 도곡(桃谷)이며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영파정(纓波亭) 안(岸)의 현손이며 대사간(大司諫) 죽곡(竹谷) 장영(長榮)의 아들로 전남 영광에서 1545(인종1)에 태어났다.

그리고 뒤에 그의 숙부인 생원(生員) 억영(億榮)의 양자로 입계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공령을 사하고 처향인 부안으로 이거하여 지금의 상서면 도화동으로 이사를 하여 맑은 시냇물가에 초당을 짓고 은둔하면서 경사를 강론하고 여러 차례의 부름에도 나가지 아니하였다.

1592년(선조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매 과감히 일어서서 의병을 모아 제봉 고경명(霽峰 高敬命), 중봉 조헌(重峰 趙憲), 건재 김천일(健齋 金千鎰)의 진중에 의병을 보냈다. 그뿐 아니라 군량도 모아서 계속하여 의병진에 보냈다.

1597년(선조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서 적군이 부안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자행하려 하므로 그는 의병을 모아 이끌고 지금의 상서면 청등에서 적군관 3일간 걸쳐 역전하여 일단 그들을 물리쳤는데 왜적이 군사를 다 시 정비하여 침입하니 힘껏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9월 19일에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부인 부안김씨(扶安金氏)는 남편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그곳으로 나아가서 병졸을 이끌고 죽창으로 맞서 싸우다가 같이 전사하였다. 적군이 물러간 뒤에 도곡(桃谷) 내외의 시신을 찾지 못하여 도화 동 뒷산에 초혼하여 무덤을 모시었다고을 마을사람들은 그의 함덕과 충성심 그리고 부인의 충렬의 미덕을 추모하여 무덤 근처에 타루비(墮淚碑)를 세웠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언제인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은 1979년에 다시 옛날의 타루비를 다시 세웠다. 사람들은 그가 오랑캐를 쳤다고 하여 그 재를 호벌치(胡伐峙)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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