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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덕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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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김경덕’
金景德

시대 : 1536년(중종 31)~ ?

선 중엽의 문신. 자는 득원(得元), 본관은 부안이다. 좌랑(佐郞) 응추(應秋)의 아들로 부안군 상서면 청림 마을에서 태어났다. 1579년(선조 2)에 44세로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고을의 수령(守令)과 홍문관교리(弘文館敎理)를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냈으나 당시의 세정이 혼탁하여 자기의 뜻을 받아주지 않으므로 벼슬길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지냈다.

그러다가 그가 57세가 되던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아우인 경장(景章), 탁상(卓祥)과 함께 그의 외숙인 야수(野叟) 채홍국(蔡弘國)이 창의, 선비를 모집하기에 이르니 흥덕(興德)의 남당창의소(南塘倡義所)에 참여해 92명의 동지들과 삽혈동맹(揷血同盟)을 맺고, 군기도감(軍器都監)의 책임을 맡았다.

그리하여 1592년 10월에 전남 순천의 석보창에서 적군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후에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다시 전날의 삽혈동맹을 맺은 동지들과 함께 부안의 호벌치(胡伐峙)에서 적을 맞아 그의 외숙인 채홍국 등 많은 의병들과 함께 적군을 막았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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