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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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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김청’
金淸

시대 : 1529년(중종 24) ~ 1595년(선조 28)

김청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서 자는 덕형(德泂)이고 호는 지재(止齋)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529년(중종24)에 현감 치장의 8남중의 막내 아들로 지금의 부안군 행안면 마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에는 고려의 명종조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인경(仁鏡)이 있는데, 그로부터 대대로 명환을 배출하였으며 천서(天瑞)에 이르러서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에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에 올랐고, 또한 그의 딸이 정종의 왕비가 되었으므로 그가 졸한 뒤에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이 되었다.

이처럼 명문에 속하는 그의 가문은 그의 아버지인 치장때부터 부안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세거하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순수하고 효우를 돈독히 실천하였다. 자라서는 학문이 익었지만 과거(科擧)에 나가기를 싫어했으나 그의 부모의 명이 있어서 마침내 1553년(명종8)에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그로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서 헌납(獻納)을 지냈고, 얼마후에 영광, 안악, 여산, 선천의 수령(守令)을 지냈다. 거기에서 대사간으로 중앙에 들어왔고, 이후에 전후 30년간에 12고을의 목사(牧使)를 지냈다. 그러다가 그는 대사성(大司成)으로 재임중 물러나서 고향에 있었다. 이때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서 선조가 용만(龍灣)으로 몽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64세의 노구로 필마로 달려서 용만에 이르러 선조를 호종하였다.

그러다가 1594년(선조27)에 어떤 일로 부평부사(富平府使)로 좌천되었는데 이듬해인 1595년(선조28)에 그곳에서 병을 얻어 졸하였다. 때에 그의 나이는 67세였다. 부안의 마동에 있는 선영으로 반장하였다.

그에게는 4남이 있는데 장남 등은 진사(進士)이고, 차남 발은 절제사(節制使)요, 삼남 규와 사남 언은 통덕랑(通德郞)이 었으며, 그의 후손은 지금의 고창군 흥덕과 부안군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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