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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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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고희’
高曦

시대 : 1560년(명종15) ~ 1615년(광해군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이 제주(濟州)이며 문충공(文忠公) 경(慶)의 후예이고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사렴(士濂)의 아들로 부안읍 성남리(지금의 봉덕리 쟁갈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효성이 지극하고 기국이 뛰어났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1592(선종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선조가 의주(義州)로 서행할 때에 도보로 호가하여 평양까지 이르렀다.

그 사이에 선조의 식사를 전담하여 식량과 찬의 공급 등 일체를 그가 주선하였고 평양에서 군기시(軍器時) 주부(主簿)에 제수되어 각종 군비를 정비하였다. 평양에서 어가를 다시 의주로 옮길 때에도 그가 모시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선조의 서행 길에 큰 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그 후 1597년(선조30)에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니 호조판서(戶曹判書) 김수(金粹)의 천거로 군산공세(群山貢稅) 전운사(轉運使)가 되어 명군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을 맡아 힘껏 책임을 완수했다.

이어서 위원(渭原) 부령(富寧) 풍천(豊川)등 주로 북방의 요새지의 수령직을 맡아서 깨끗하게 다스리며 많은 치적을 남겼다. 난이 끝난 뒤인 1604년(선종37)에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三等)에 녹훈되어 18공신(十八功臣) 회맹록(會盟錄)에 들어갔다. 그리고 영성군(瀛城君)에 봉하고 그의 초상화를 하사받았다.

후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1615년(광해 7)에 졸하니 향년 56세였다. 조정에서는 예장(禮葬)을 내리고 호조판서(戶曹判書)의 증직을 내리고 부조묘(不祧廟)를 특사하였다. 한편 그의 공신녹권(功臣錄券), 초상화, 그의 관복 등의 유품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서 국가보물로 지정을 받아 보호각을 지어서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신녹권은 석봉(石蜂) 한호(韓濩)의 글씨이기에 더욱 귀한 보물이다. 또한 지금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에는 효충사(效忠祠)를 지어서 그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그 옆에는 기념관을 지어서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그의 후손은 지금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일대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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