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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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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김계’
金啓

시대 : 1528년(중종 23) ~ 1574년(선조 7)

조선전기의 문신. 자는 회숙(晦叔)이요, 호는 운강(雲江)이며 본관은 부안(扶安)으로 옹정(甕井)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평장사를 지낸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사온서직장 회윤(懷允)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사도시(司道寺) 첨정(僉正) 직손(直孫)이고, 아버지는 석옥(錫沃)이며 어머니는 신중수(辛仲粹)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예가 뛰어났고 자라서는 하서 김인후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1552년(명종 7)에 25세의 약관으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그로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서 예문관(藝文館) 한림(翰林)을 거쳐 1571년(선조 4)에는 명나라에 성절사의 부사로 다녀왔었는데, 명에 가서 통역 없이 바로 대화를 할 만큼 중국어에 능통하였기에 그 뒤부터는 명의 사신이 오면 그가 언제나 접반사로 뽑히게 되었다.

귀국 후에는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제수되었고, 이어 이조(吏曹)를 비롯한 4조의 참판(參判)을 지냈으며 외직으로는 황해감사를 역임했다. 그는 학문이 깊어서 당시의 석학인 미암(眉岩) 유희춘(柳希春), 사암 (思庵) 박순(朴淳), 옥계(玉溪) 노진(蘆眞), 퇴계(退溪) 이황(李滉),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율곡(栗谷) 이이(李珥),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등과 도의를 강론하였는데 그들은 그의 높은 학문에 감탄했다.

그가 남긴 공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일은 좌승지(左承旨)로 있을 때에 이황이 선조에게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억울함을 아뢰니, 선조는 김계에게 그 진상을 물었다. 이에 대하여 그는 기묘사화의 억울함을 소상히 아뢰고, 다시 대사간(大司諫) 홍사상(洪士尙), 대사헌(大司憲) 김귀영(金貴榮), 부제학(副提學) 노수신(盧守愼)이 사실을 전하고 바로 이어서 상소문을 만들어 그 억울함을 아뢰니, 선조는 그 억울함을 인정하고 바로 남곤(南袞)과 심정(沁貞)의 벼슬을 추탈하고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등 억울하게 화를 입은 기묘명현(己卯名賢)들을 모두 신원하였다.

이 뒤로는 다시는 기묘사화에 대한 논란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1574년(선조 7)에 48세란 장년에 졸하였다. 그의 묘는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席洞山)의 선영에 있으며 그의 비문은 수종제(守宗齌)와 송달수(宋達洙)가 지었다.

그가 졸한 뒤에 고을의 선비들이 그의 학문을 추모하여 그의 선조인 지포 김구를 주벽으로 향사하고 있는 도동서원(道東書院)에 추배하였다. 그러나 이 서원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때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지금은 그 터만이 남아 있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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