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자연이 숨쉬는 아름다운 부안!

김석홍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 부안이야기 > 부안이야기 > 부안의 인물 > 김석홍
글자키우기 글자줄이기
인쇄하기
부안의 인물 ‘김석홍’
金錫弘

시대 : 1473년(성종4) ~ 1546년(명종 1)

김석홍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문신으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대이(大而)이며 호가 옹천(壅泉)이다.

문정공(文貞公) 구(坵)의 후예이며 사도시(司導侍) 첨정(僉正)을 지낸 직손(直孫)의 아들로 부안읍 옹정(甕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예가 뛰어나 학문을 일찍 익혀서 성리설(性理說)을 논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을 만나서 성리학의 깊은 학설을 배우게 했다. 1504년(연산 10)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면서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등과 친교를 맺고 서로 학문을 강론하였다.

1511년(중종 6)에 조광조, 황택, 김석홍 세 사람을 성균관에서 추천했으나 조정에서는 조광조만을 조지서(造紙署) 사지(司紙)에 제수했다.

그 후 다시 1516년(중종 11)에 조광조가 그를 천거 하였지만 역시 벼슬길에 나가지는 못하였다. 이어 1571년(중종 12)에 전라도 관찰사 조원기의 천거로 경기전(慶基殿) 참봉(參奉)에 제수되었다가 희릉참봉(禧陵參奉)으로 옮겼다.

1519년(중종 14)에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많은 선비가 화를 입게 되었는데 그도 조광조와 친분이 두터웠기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두문불출하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힘을 썼다. 1529년(중종 24)에 그의 나이 57세였을 때 조정에서 그를 사옹원(司饔院) 참봉(參奉)으로 불렀다.

그로부터 선릉참봉(宣陵參奉), 사옹원 직장(司饔院 直長),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횡성현감(橫城縣監), 군자감판사(軍資監判事), 한성판관(漢城判官), 임피현령(臨陂縣令), 수안군수(綏安郡守)등의 관직을 지냈는데 특히 수안군수에 임명될 때는 1544년(중종 39) 그의 나이 72세의 고령이었으므로 그는 늙고 병들어 갈 수 없다고 사직 상소를 올리자 중종(中宗)은 그를 불러들여 「그대가 늙고 병들었지만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지 않느냐? 잠시 가서 그 고을을 교화시키어라」하니 어쩔 수 없이 부임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546년(명종 1)에 그 곳에서 병으로 졸하니 향년 74세였다.

그의 묘는 부안읍 연곡리에 있는 석동산(席洞山)에 있으며 사림에서는 그의 학덕을 추모하여 도동서원(道東書院)에 배향(配享) 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 부안군의 각처에 산재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그의 문집으로『옹천학문요집(壅泉學問要輯)』2권이 전한다.

- 부안군지 中에서 -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