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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비장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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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손비장’
孫比長

시대 : 출생: 미상, 사망: 미상, 1464년(세조10)~ 1504년(연산군)

손비장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문효공 순의 후손으로 현감 민의 아들로 부안에서 태어났다. 1464년(세조10)에 생원(生員)으로 온양(溫陽)에서 설행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응시하여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그로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서 여러 관직을 거쳤고 1476년(성종 7)에는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에 제수되었다.

그 뒤에 승지(承旨) 행부호군(行副護軍)등을 거쳐 사간원 대사간 (司諫院 大司諫) 예문관 부제학(藝文館 副提學) 공조참의(工曹參議), 판결사(判決事)등의 요직을 거쳤다.

또한 세조실록 찬수관(世祖實錄 纂修官), 예종실록 찬수관(睿宗實錄 纂修官)을 거쳤고, 성종때에는 홍문관(弘文 館)에 15학사로 뽑혀가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과 함께 학문을 연찬했고, 또한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 正)과 함께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하여 성종에게 올렸다.

이렇게 관계에서 이름을 떨쳤던 그는 만년에는 훈구파(勳舊派)들과 뜻이 맞지 않아서 고향인 부안으로 낙향하여 지금의 주산면 갈촌에 영귀당(詠歸堂)이란 집을 짓고, 입암이라 호하여, 당대의 석학인 뇌계 유호인, 매계 조위 등과 시문을 주고 받으며 노후를 보냈다.

그의 묘는 지금의 부안읍 봉덕리 안쟁가리 뒷산에 있으며 그 옆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한편 그의 증손에는 을사사화(乙巳士禍)에 화를 당한 도봉 손홍적과 임진왜란 때『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보존에 공이 있는 한계 손홍록이 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은 오늘날 부안, 정읍, 임실 일대에 산재하여 살고 있다.

- 부안군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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