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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부안을 빛낸 부안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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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인물 ‘김구’
金 坵

시대 :1211년(희종7) ~ 1278년(충렬왕4)

김구선생은 1211년(고려희종 7년) ~ 1278년(충렬왕 4년) 때의 사람으로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라 하였다. 김구선생은 우복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시문에 능하여 신동이라 불리었으며 12세에 조사시에 합격하였다.

1232년(고종 19)에 22세로 문과 급제하여 정원부사록(定遠府司錄), 제주판관(濟州判官),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다시 유경의 천거로 예부시랑이 되어 원나라에 대한 외교문서를 맡았다. 이어 원에 서장관으로 다녀 왔는데 그때에『북정록(北征錄)』이란 책을 지었다. 1263년(원종4) 우간의대부, 이어 상서(尙書), 좌복야,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정당문학(政堂文學), 이부상서(吏部尙書), 참지정사(參知政事),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등 을 역임하였다. 1274(충령왕1)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로 있다가 참문학사(參文學士), 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 가 되어 통문관(通文館)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국내의 연소자에게 중국어를 배우게 했다.

김구선생은 나이가 들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부안으로 돌아와 부안읍 선은동에 살며 지금의 부안군 변산면 지포(현 지서리)에 별장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1278(충렬왕4)에 68세를 일기로 졸하니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공적을 기리어 문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의 묘는 지금의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산3번지에 그의 공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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